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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문인 아카이브

[염상섭] 소설가 염상섭과 성북 1953년 부산 피란 시절, 한 일간지 좌담회장에 모인 ‘폐허’ 동인들. 오른쪽부터 변영로, 박종화, 오상순, 염상섭의 모습이 보인다. 염상섭의 생애 횡보(橫步) 염상섭 선생님은 1897년에 태어나 1963년 직장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뜻 깊은 작품들을 많이 발간했습니다. 1912년 일본으로 가 유학생활을 하다가 병으로 자퇴한 뒤 1919년 3월 독립 시위를 도모하다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1921년 첫 작품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발표한 이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다 1963년,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단편을, 30년대 이후에는 장편을 주로 집필하였는데요, 40년간 장편 28편, 단편 150편, 평론 101편, 수필 30편을 발표하였습니다.작품소재는 서울 중류층, 지식..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8 - 이현우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현우 시인에 대한 기억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찔레꽃]의 소설가 김말봉의 의붓아들로 이현우 시인이라는 이가 있었어. 정식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었는데, 동국대학교에 잠깐 적을 둔 적이 있어서 나랑 친해졌지. 이 사람은 집을 한 번 나오면 보름씩, 한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명동을 맴돌았어.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나오면 말이야, 맨 처음으로 넥타이가 빠져나가고 윗도리, 구두, 와이셔츠까지 하나씩 없어지곤 했지. 그러다 러닝 차림이 될 즈음이면 배다른 누이동생이 찾아 왔고, 또 못이기는 척 집으로 끌려 들어가. 소문에는 그가 여러 신문에 동시에 연재되는 김말봉의 소설을 대필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초고로 넘겨지는 소설..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7 - 한남철 소설가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한남철 소설가에 대한 기억 한남철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는 참 재미있으면서 무거운 것이 있지. 그는 월간 중앙 편집을 맡고 있었는데 정말 거침이 없었어. 마음에 들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사정없이 퇴짜를 놓았지. 친구들의 소설을 읽고도 ‘재미가 없어!’라고 말하거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아 먹을 수가 없네!’라고 말하고는 했었어. 그래서 적도 많았지만, 그 시원시원한 태도 때문에 좋아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어. 물론 문인들 중에는 드물게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술 사기를 아까워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남철 소설가를 단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문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아무리..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6 - 민병산 선생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민병산 선생에 대한 기억 글씨를 엄청 잘 쓰던 민병산 선생이 있었어. 처음에는 좀 서투른 글씨를 썼었는데, 하루 이틀 정진해 나가더니 결국에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체를 가지게 되었지. 그런 민병산 선생이 아버지랑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나랑 천상병 시인이 본적이 있어. 관철동 한국기원 앞이었는데, 구부정하게 늙은 민병산 선생이 담배를 든 손을 뒤로하고는 발끝을 보고 서 있었고, 그보다 더 늙은 똑같은 얼굴의 아버지는 담배를 문 채 하늘을 향해 서 있었지. 그러기를 십분. 아버지가 ‘들어가봐라’ 라고 말하니, 민병산 선생이 ‘네’ 하고 한국기원으로 올라가고, 아버지는 골목으로 사라지더라고. 그 모습을 같이 본 ..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5 - 김관식/천상병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김관식 / 천상병 시인에 대한 기억 하루는 천상병 시인하고 김관식 시인 집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잤거든. 그런데 다음날 천상병 시인이 나한테 이러는 거야. ‘오늘 나만 따라다니레이. 술 실컷 먹여주꾸마’ 나는 신이 나서 따라나섰지. 그랬더니 동대문에 있는 고서점으로 나를 이끌더라고. 그때만해도 다 읽은 책을 고서점에 내다 팔고 술마시는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렇게 앞장서서 가던 천상병 시인이 고서점에 들어가서는 ‘내 귀한 책 가져왔으니까 값을 잘 쳐주시오!’이러면서 종이봉투를 당당하게 내미는 거야. 그런데, 주인이 종이봉투를 여는데 헌 원고지가 나오더라고. 천상병 시인은 당황해서는 ‘이럴 리가 없다. 분명히 내가 ..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4 - 김관식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김관식 시인에 대한 기억 [대한민국 김관식]이렇게 명함에 박아서 지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던 시인이 있었어. 서정주 선생하고 동서지간이었는데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정초에 선배 문인들한테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김관식 시인이 이러는 거야. ‘서정주 형님은 친일을 했으니, 조지훈 시인한테 먼저 가자.’ 그리고는 성북동으로 갔지. 가서 세배 드리고 술을 마시는데 저녁까지 마셨어. 그리고 서정주 시인 댁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김관식 시인 신발이 없는 거야. 술에 많이 취해서 택시를 타는데 신발을 벗고 탄거지. 그렇게 맨발로 서정주 시인 댁에 가서 세배를 드렸지.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다정하게 우리를 반겨 주셨거..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3 - 조지훈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조지훈 시인에 대한 기억 조지훈 시인은 고려대에서 교수를 지냈거든.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학교 교수면 나는 시험도 안치고 등록금도 안 내고 아버지가 계신 대학에 입학할 수가 있었어. 지금 들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지. 그런데 조지훈 시인은 자기 자식들을 절대로 고려대로 입학하지 못하게 했어. 당시에도 아셨던 거지.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말이야.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는 것도 못하게 할 정도였는데 뭐. 어쨌든 사모님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거지.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등록금도 안 내고 보낼 수도 있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하니. 하나도 아니고 둘째까지. 그래서 가끔 남편을 향해서 ‘멍텅구리!’..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2 - 청수장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청수장에 대한 기억 성북에 청수장이라고 있었어. 지금 들으면 무슨 여인숙 같은 이름이지만, 그때만 해도 알아주는 곳이었거든.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거기서 첫날밤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고, 다니는 차들도 없어서 택시를 불러서 가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드는 곳이었지. 애인이랑 비싸고 멋진 곳에 가고 싶잖아. 그게 청수장이었지. 거기 가려고 돈을 모으는 친구도 있었고, 다녀와서 자랑하는 친구들도 있었어.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그런 게 뭐 대수인가 싶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사치였거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사치.시간이 지나 많은 게 바뀌었지만, 요즘 사람들도 가지고 있지 않나?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1 - 조지훈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조지훈 시인에 대한 기억 밤늦게 집에 들어가다 조지훈 시인 집 앞을 지나잖아. 혹시라도 불이 켜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거기로 가는 거야. 문을 두드리면 키 큰 양반이 나와. 조지훈 시인이 키가 컸거든. 그럼 거기서 또 마시고 자는 거야. 원래부터 그런 것처럼. 아침이 되면 사모님이 아침식사까지 차려주고 그랬지. 몇 명이 들이닥쳐도 한결같이 말이야. 성북동을 지나다 문득 그 집 근처를 지나면 생각나. 이제는 허물어지고 없어졌지만, 기억, 지난날은 그 자리 그대로니까. 조지훈의 시 승무 얇은 사 하야인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각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 박완서의 생애 박완서(朴婉緖, 1931년 9월 15일 ~ 2011년 1월 22일)소설가. 경기도 개풍군 출생. 대중인기작가이면서 문학성도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 숙명 여고에 다니면서 한말숙·박명성 등과 사귀었으며, 담임교사인 월북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빠와 삼촌이 죽자 생계를 잇기 위해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했으며, 이때 화가 박수근을 알고 그의 그림에 감명받았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나목 裸木〉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이어 〈부처님 근처〉(현대문학, 1973. 7), 〈주말농장〉(문학사상, 1973. 10), 〈겨울나들이〉(문학사상, 1975. 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76..
[박경리] 소설가 박경리와 정릉 박경리의 생애 박경리(朴景利, 1926년 12월 2일 ~ 2008년 5월 5일)소설가,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박금이'로 박경리라는 필명은 김동리가 지어준 것이다. 1945년 진주여고 졸업. 1955년 단편 〈계산〉과 1956년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추천됨으로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57년에는 전쟁 후의 상처를 다룬 《불신시대》를 발표하여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는 등 신인작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8년에는 〈도표 없는 길〉, 〈암흑시대〉와 장편 《연가》를 발표하였으며, 1959년에 장편 《표류도》를 발표하여 내성문학상을 수상했다. 박경리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는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사는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많다. 1960년대 ..
[최순우] 미술사학자, 작가 혜곡 최순우 최순우의 생애 최순우(崔淳雨, 1916년 4월 27일 ~ 1984년 12월 16일)미술사학자이자 작가. 개성 태생. 본명은 희순(熙淳)이며 순우(淳雨)는 그의 이명(異名)이자 필명이다. 아호는 간송 전형필이 지어준 혜곡(兮谷). 대표관직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주요저서는 《한국미술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등》, 《최순우전집》 등.1946년국립개성박물관 참사를 지내고, 1948년 서울국립박물관으로 전근하여 보급과장·미술과장·수석학예연구관·학예연구실장을 거쳐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한 이후 죽을 때까지 재직하여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마쳤다. 6·25사변 중에는 생명을 내걸고 소장 문화재를 부산으로 안전하게 운반하였다. 1950년대 초반 서울 환도 등 혼란 중에국..
[조지훈] 시인 조지훈과 성북 조지훈의 생애 조지훈 (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국문학자 · 시인. 경상북도 영양 출생. 본명은 동탁(東卓). 지훈의 뜻은 芝(지초 지) - 풀꽃 지 라고도 하며 들판에 일반적으로 자생하는 풀들을 지칭한다. 薰(훈할 훈) - 향기로운 훈 이라고도 하며 지훈이라는 이름 뜻은 특정한 꽃이나 나무의 향기가 아니라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향기 즉 들판을 거닐다 느낄 수 있는 풀향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1941년 21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고, 불경과 당시를 탐독하였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편찬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에 전국문필가협회와 청년문학가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7년부터..
[한용운] 만해 한용운과 성북 만해 한용운의 생애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승려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홍성 출생. 본관은 청주. 본명은 정옥, 아명은 유천,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16세 되던 해 동학란과 갑오경장이 일어났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활의 방편으로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하여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불교에 입문한 뒤로는 주로 교학적 관심을 가지고, 대장경을 열람하였으며, 특히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 즉 불교의 대중화작업에 주력하였다. 1910년에는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논저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36세 때 《불교대전》과 함께 청나라 승려 내림의 증보본에 의거하여 《채근담》주해본을 저술하였다. 1910년 한일 합방이 되면서 그는 만..
[이태준] 상허 이태준과 성북 성북구 저택앞에서 찍은 이태준 작가 가족사진 이태준의 생애 이태준(李泰俊 ,1904년 ~ 미상), 현대문학 소설가.강원도 철원 출생, 호는 상허(尙虛), 대표관직(경력) :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단편소설 〈오몽녀〉(1925)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아무일도 없소〉(동광, 1931.7.), 〈불우선생〉(삼천리, 1932.4.), 〈꽃나무는 심어놓고〉(신동아, 1933.3.), 〈달밤〉(중앙, 1933.11.), 〈손거부〉(신동아, 1935.11), 〈가마귀〉(조선, 1936.1), 〈복덕방〉(조선, 1937.3), 〈패강냉〉(삼천리문학, 1938.1), 〈농군〉(문장, 1939.7), 〈밤길〉(문장, 1940·5·6·7합병호), 〈무연〉(춘추, 1942.6), 〈돌..
[김광섭] 시인 김광섭과 성북 성북동 북정마을 김광섭의 생애 김광섭(金珖燮, 1906년 9월 21일 ~ 1977년 5월 23일)호 : 이산(怡山), 출생지 : 함북 경성, 본관 : 전주주요저서 : 《동경》, 《성북동 비둘기》주요작품 : 《고독(孤獨)》, 《푸른 하늘의 전락》, 《고민의 풍토》등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고뇌와 민족의식을 관념적으로 읊다가 차츰 구체적인 현실을 노래했다. 시어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1911년 온 가족이 북간도로 이주했다가 1년 만에 돌아왔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15년 경성보통학교에 입학, 1920년 졸업했다. 1919년 이학순과 결혼했다.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중동학교에 들어가 1924년 졸업했다.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
[김교신] 독립운동가 김교신과 정릉 성북구의 독립운동가 - 김교신 2015년 8월 아리랑정보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 강연에서는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조규태 교수님께서강연을 진행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북구청 소식지인 '성북소리' 8월호에도 독립운동가 김교신의 기사가 실렸는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김교신의 생애 김교신(金敎臣, 1901년 3월 30일 ~ 1945년 4월 25일) 출생지 : 함남 함흥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훈격(연도) : 건국포장 (2010) 김교신은 함흥농업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동경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지리, 박물과로 전과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 당시 무교회운동을 전개하던 우치무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유학생이던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유석동..
[길상사] 백석과 자야 1995년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출발하여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꾼 이곳은 원래는 요정 대원각이 있던 곳이다. 백석, 자야 기행 그리고 영한 백석(白石·1912∼1996),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나와 나타샤와 흰 장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던 천재 시인. 천재 시인 백석 앞에 홀연히 나타난 여인이 바로 백석의 자야, 김영한(1916∼1999)입니다. 그녀 나이 열여섯, 기울어가는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되었습니다. 백석과 기생 진향의 첫 만남, 그리고 ‘자야’ 진향 스물 둘. 백석 스물 여섯. 백석은 첫눈에 진향을 와락 안으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