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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문인 아카이브/기억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 시인 신경림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4 - 김관식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김관식 시인에 대한 기억

 

 [대한민국 김관식]이렇게 명함에 박아서 지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던 시인이 있었어. 서정주 선생하고 동서지간이었는데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정초에 선배 문인들한테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김관식 시인이 이러는 거야. ‘서정주 형님은 친일을 했으니, 조지훈 시인한테 먼저 가자.’ 그리고는 성북동으로 갔지. 가서 세배 드리고 술을 마시는데 저녁까지 마셨어. 그리고 서정주 시인 댁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김관식 시인 신발이 없는 거야. 술에 많이 취해서 택시를 타는데 신발을 벗고 탄거지. 그렇게 맨발로 서정주 시인 댁에 가서 세배를 드렸지.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다정하게 우리를 반겨 주셨거든. 그리고 또 술자리가 이어지는데 …… 그냥 분위기 좋게 마시면 될걸, 김관식 시인이 그러는 거야. ‘형님, 사실 오기 전에 조지훈 선생님댁에 먼저 다녀왔어요. 형님은 친일을 하셨으니 밀리신거에요.’ 서정주 선생이 술을 따라주던 주전자로 김관식 시인 머리를 때리시더라고. 김관식 시인은 그런 사람이었어.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하는 그런 사람. 누구누구 문인 출판기념회에 가서는 ‘이런 것도 책이라고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하는데…… 모두가 질색을 했지.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김관식 시인을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안 했는데, 또 어떻게 알고 제발로 찾아가. 그리고 당당하게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거야. 물론 칭찬보다는 날선 비판이 담긴 말들이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문학을 사랑한 시인이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 아니겠어? 내가 사랑하는 문학이었기에 어정쩡한 책들을 책으로 인정 할 수가 없었던 거지. 요즘 가끔 그리워. 나, 이만큼 문학을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말하던 그 목소리가 말이야.

 

김관식의 시 

 자하문 밖

나는 아직도 청정이 어우러진 수풀이나 바라보며 병을 다스리고 

살 수 밖엔 없다. 혼란한 꾀꼴새의 매끄러운 울음 끝에 구슬 목청을

메아리가 도로 받아 얼른 또 넘겨 빽빽한 가지 틈을 요리조리 휘돌아

을러 흐르듯 살아가면서 앞길은 열리기로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길은 물이 흘러가는 길.

山마을 어느 집 물항아리에 나는 물이 되어 고여 있다가 바람에 출렁거려

한 줄기 가느다란 시냇물처럼 여기에 흘러왔을 따름인 것이다.

 

여름 햇살이 어름처럼 여물어 쏟아지는 과일밭,

새카맣게 그을은 구리쇠빛 팔다리로 땀을 적시고 일을 하다가 가을철로

접어들면 몸뚱아리에 살오른 실과들의 내음새를 풍기며

한 번 쯤 흐물어지게 익을 수는 없는가.

 

해질 무렵 석양 하는 언저리

수심가같이 서러운 노을이 떨어지고 밤그늘이 덮이면

예저기 하나둘 씩 초록별이 솟아나

새초롬한 눈초리로 은근히 속샐기며 어리석음을 흔들어 일깨워준다.

 

수줍은 달빛일래 조촐하게 물들어 영롱히 자라나는 한 그루 향나무의

슬기로움을 그 곁에 깃들여서 배우는 것은 여간 크낙한 기쁨이 아니라서

스스로의 목숨을 곱게 불살라 밝음을 얘기하는 난낱 촛불이 열두 폭 병풍 두른

조강한 신혼 초야 화촉동방에 시집온 큰애기를 조용히 맞이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구름 속에 파묻혀 기러기 한백년을 이냥 살으리로다. 

 

출처

*신경림 이미지 - 경향신문

 

*김관식 이미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8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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