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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2022 문화도시 성북 아카이브 영상 | 도서관은 실험실💕 더 좋은 동네로 나아가기 위한 상상과 실험이 가능한 곳 💗도서관은 실험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2022년 성북구립도서관은 성북이 문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거듭할 수 있는 실험실이 되었습니다. 성북에 흩어진 아카이브를 모아 연결하는 지역 주민들이 모여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고민과 질문을 나누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주체적인 학습공동체를 실험해 보는 도서관에 방문하는 ‘누구나’를 세대별로 주목하고 환대하는 삶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 온 도서관 거버넌스를 진단하고 미래를 상상해 보는 성북구 도서관 곳곳에서 여러 이야기와 활동이 담긴 도서관은 실험실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문화도시 사업의 결과와 이야기를 담..
2022 아리랑도서관 <같이의 가치 실천안내서:같이가치 살다, 하다> 안내 [같이의 가치 실천안내서: 같이가치살다.같이가치하다.] 2022 아리랑도서관은 "지역공동체"라는 공통주제 아래 연관 핵심키워드 #공동체 #공유경제 #지역소비 연계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50건의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20여명의 아리랑도서관네트워크와 지난 9.28.(수) 실천토론회를 통해 확정된 실천슬로건으로 지역상점 20곳과 관계맺은 실천캠페인이 시작됩니다. 많은 참여와관심 바랍니다. [아리랑도서관 같이의 가치 실천안내서: 같이가치살다.같이가치하다.] 장소: 아리랑도서관 로비, 1층 랩실, 2층 자료실2, 3층 자료실3, 기간: 10.11.~11.30. 우리동네에서 문화로 즐길거리(볼거리, 읽을거리, 만들거리)를 알려준데, 나만알기 아까운 잇북과 잇스페이스도 공유해주세요! 주제전시 바로..
[아리랑도서관] 어르신 수다왕을 찾습니다! [2019 노인이야기 들어주는 청년예술가 프로젝트] 어르신 수다왕을 찾습니다! 우리동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어르신! 아리랑도서관에서 청년예술가와 함께해요! 📍대상 : 성북구 거주 70세 이상 어르신 (10명)📍접수기간 : 6/15(토) ~ 7/5(금)📍일시 : 7월~9월 (화요일 오후 5시~7시)총 12회📍장소 : 아리랑도서관(세미나1실 외) ☎️접수 및 문의 : 방문(아리랑도서관 1층 LAP실) 및 전화접수(02-6906-9356)
[나중소] 청산리대첩의 숨은 영웅 나비장군 나중소의 생애 나중소(羅仲昭)1867.04.13~1928.08.18 나중소 선생은 1867년 4월 13일, 경기도 고양군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탁월한 무예 실력을 자랑했다. 이로 인해 16세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곧바로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대한제국 진위대 부위로 재직한 선생은 1907년 9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 당한 뒤,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선발되어 국비유학생으로 유학해 일제의 군대의 특성을 공부했다. 이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등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1919년 3월, 나중소 선생은 북간도 왕청현에서 서일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한정의단의 교관으로 초빙되어 수백 명의 무장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그 해 10..
[최용덕]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최용덕의 생애 최용덕(崔用德) 1898. 9. 19 ~ 1969. 8. 15 1898년 9월 19일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상을 익혔고, 1916년 원세개가 설립한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단기서 군의 제2사단에서 복무했다. 이러한 경험은 선생의 항일무장투쟁에 큰 자산이 된다.1919년 중국에서 3.1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선생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선생은 다수의 한인독립운동가들과 유학생들이 거주하던 중국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청년단 단원 모집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1921년 4월 이후 의열단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선생은 단장 김원봉과 함께 1922년 의열단의 국내거사를 준비하여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조소앙] 삼균주의 자주국가를 꿈꾸었던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생애 조소앙(趙素昻)1887.4.30 ~ 1958.9.10본관 함안(咸安). 호 소앙. 본명 용은(鏞殷). 자 경중(敬仲). 경기도 파주(坡州)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조선법학전수학교(朝鮮法學專修學校)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여 국무위원 겸 외무부장 등을 지내고, 1919년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국제 사회가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촉구하는 특별결의안이 채택되도록 하였다. 1922년 임시정부의 내분을 수습하려고 김구(金九)·안창호(安昌浩) 등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결성하고,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며, 1937년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 결성에 한국독립당 ..
[2019 성북구 한 책 읽기]한책운영위원회 1차 토론회 후기(1) 📔[2019 성북구 한 책 읽기] 드디어! 한책운영위원회 1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1차 토론회에서는 [산책을 듣는 시간], [당분간 인간] 2권을 읽으며 함께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앞으로 총 5번의 토론회를 거쳐 후보도서 10권 중 최종 후보도서 4권을 선정할 예정입니다! 📔올해의 한 책 최종후보도서 4권을 읽고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한책추진단으로 함께 해주세요!🙂 올해의 한 책을 내 손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기간 : 2019.05.27.(월) ~ 07.29.(월) ✅대상 : 청소년 이상 누구나 ✅신청 : (1) 성북구립도서관 현장(방문)접수 (2) 성북구립도서관, 성북문화재단 홈페이지 (3) 신청 바로가기(클릭) 👉 bit.ly/2019한책추진단 ❤️한책..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8 - 이현우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현우 시인에 대한 기억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찔레꽃]의 소설가 김말봉의 의붓아들로 이현우 시인이라는 이가 있었어. 정식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었는데, 동국대학교에 잠깐 적을 둔 적이 있어서 나랑 친해졌지. 이 사람은 집을 한 번 나오면 보름씩, 한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명동을 맴돌았어.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나오면 말이야, 맨 처음으로 넥타이가 빠져나가고 윗도리, 구두, 와이셔츠까지 하나씩 없어지곤 했지. 그러다 러닝 차림이 될 즈음이면 배다른 누이동생이 찾아 왔고, 또 못이기는 척 집으로 끌려 들어가. 소문에는 그가 여러 신문에 동시에 연재되는 김말봉의 소설을 대필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초고로 넘겨지는 소설..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7 - 한남철 소설가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한남철 소설가에 대한 기억 한남철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는 참 재미있으면서 무거운 것이 있지. 그는 월간 중앙 편집을 맡고 있었는데 정말 거침이 없었어. 마음에 들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사정없이 퇴짜를 놓았지. 친구들의 소설을 읽고도 ‘재미가 없어!’라고 말하거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아 먹을 수가 없네!’라고 말하고는 했었어. 그래서 적도 많았지만, 그 시원시원한 태도 때문에 좋아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어. 물론 문인들 중에는 드물게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술 사기를 아까워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남철 소설가를 단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문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아무리..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6 - 민병산 선생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민병산 선생에 대한 기억 글씨를 엄청 잘 쓰던 민병산 선생이 있었어. 처음에는 좀 서투른 글씨를 썼었는데, 하루 이틀 정진해 나가더니 결국에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체를 가지게 되었지. 그런 민병산 선생이 아버지랑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나랑 천상병 시인이 본적이 있어. 관철동 한국기원 앞이었는데, 구부정하게 늙은 민병산 선생이 담배를 든 손을 뒤로하고는 발끝을 보고 서 있었고, 그보다 더 늙은 똑같은 얼굴의 아버지는 담배를 문 채 하늘을 향해 서 있었지. 그러기를 십분. 아버지가 ‘들어가봐라’ 라고 말하니, 민병산 선생이 ‘네’ 하고 한국기원으로 올라가고, 아버지는 골목으로 사라지더라고. 그 모습을 같이 본 ..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5 - 김관식/천상병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김관식 / 천상병 시인에 대한 기억 하루는 천상병 시인하고 김관식 시인 집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잤거든. 그런데 다음날 천상병 시인이 나한테 이러는 거야. ‘오늘 나만 따라다니레이. 술 실컷 먹여주꾸마’ 나는 신이 나서 따라나섰지. 그랬더니 동대문에 있는 고서점으로 나를 이끌더라고. 그때만해도 다 읽은 책을 고서점에 내다 팔고 술마시는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렇게 앞장서서 가던 천상병 시인이 고서점에 들어가서는 ‘내 귀한 책 가져왔으니까 값을 잘 쳐주시오!’이러면서 종이봉투를 당당하게 내미는 거야. 그런데, 주인이 종이봉투를 여는데 헌 원고지가 나오더라고. 천상병 시인은 당황해서는 ‘이럴 리가 없다. 분명히 내가 ..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4 - 김관식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김관식 시인에 대한 기억 [대한민국 김관식]이렇게 명함에 박아서 지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던 시인이 있었어. 서정주 선생하고 동서지간이었는데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정초에 선배 문인들한테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김관식 시인이 이러는 거야. ‘서정주 형님은 친일을 했으니, 조지훈 시인한테 먼저 가자.’ 그리고는 성북동으로 갔지. 가서 세배 드리고 술을 마시는데 저녁까지 마셨어. 그리고 서정주 시인 댁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김관식 시인 신발이 없는 거야. 술에 많이 취해서 택시를 타는데 신발을 벗고 탄거지. 그렇게 맨발로 서정주 시인 댁에 가서 세배를 드렸지.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다정하게 우리를 반겨 주셨거..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3 - 조지훈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조지훈 시인에 대한 기억 조지훈 시인은 고려대에서 교수를 지냈거든.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학교 교수면 나는 시험도 안치고 등록금도 안 내고 아버지가 계신 대학에 입학할 수가 있었어. 지금 들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지. 그런데 조지훈 시인은 자기 자식들을 절대로 고려대로 입학하지 못하게 했어. 당시에도 아셨던 거지.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말이야.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는 것도 못하게 할 정도였는데 뭐. 어쨌든 사모님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거지.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등록금도 안 내고 보낼 수도 있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하니. 하나도 아니고 둘째까지. 그래서 가끔 남편을 향해서 ‘멍텅구리!’..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2 - 청수장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청수장에 대한 기억 성북에 청수장이라고 있었어. 지금 들으면 무슨 여인숙 같은 이름이지만, 그때만 해도 알아주는 곳이었거든.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거기서 첫날밤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고, 다니는 차들도 없어서 택시를 불러서 가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드는 곳이었지. 애인이랑 비싸고 멋진 곳에 가고 싶잖아. 그게 청수장이었지. 거기 가려고 돈을 모으는 친구도 있었고, 다녀와서 자랑하는 친구들도 있었어.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그런 게 뭐 대수인가 싶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사치였거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사치.시간이 지나 많은 게 바뀌었지만, 요즘 사람들도 가지고 있지 않나?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
[신경림 시인] 기억 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 #1 - 조지훈 시인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조지훈 시인에 대한 기억 밤늦게 집에 들어가다 조지훈 시인 집 앞을 지나잖아. 혹시라도 불이 켜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거기로 가는 거야. 문을 두드리면 키 큰 양반이 나와. 조지훈 시인이 키가 컸거든. 그럼 거기서 또 마시고 자는 거야. 원래부터 그런 것처럼. 아침이 되면 사모님이 아침식사까지 차려주고 그랬지. 몇 명이 들이닥쳐도 한결같이 말이야. 성북동을 지나다 문득 그 집 근처를 지나면 생각나. 이제는 허물어지고 없어졌지만, 기억, 지난날은 그 자리 그대로니까. 조지훈의 시 승무 얇은 사 하야인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각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