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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문인 아카이브/성북문인

[오세덕] 의열단의 조력자 도피안사 - 1919년 8월 철원의 애국지사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던 대한독립애국단의 철원군단을 결성한 곳 오세덕의 생애 오세덕(吳世悳) 1897.11.19 ~ 1986.10.20 1919년 8월 강대여(姜大呂)·신원균·박건병 등과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일명 大韓獨立愛國團)을 조직하고 10월 3일 '대한민국 정부 성립 축하회 선언서'를 배포하여 제2의 만세시위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이어서 애국단 대표로서 박건병과 함께 상하이로 파견되었다. 1919년 11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강원도 철원군 조사원에 임명되었다. 1922년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주비위원회가 조직되는 등 독립운동 선상에 불화가 일어나자, 오세덕은 노령(露領)으로 가서 문창범·오창환과 같이 대한국민의회를 조직하는 데 협..
[나중소] 청산리대첩의 숨은 영웅 나비장군 나중소의 생애 나중소(羅仲昭)1867.04.13~1928.08.18 나중소 선생은 1867년 4월 13일, 경기도 고양군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탁월한 무예 실력을 자랑했다. 이로 인해 16세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곧바로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대한제국 진위대 부위로 재직한 선생은 1907년 9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 당한 뒤,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선발되어 국비유학생으로 유학해 일제의 군대의 특성을 공부했다. 이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등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1919년 3월, 나중소 선생은 북간도 왕청현에서 서일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한정의단의 교관으로 초빙되어 수백 명의 무장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그 해 10..
[최용덕]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최용덕의 생애 최용덕(崔用德) 1898. 9. 19 ~ 1969. 8. 15 1898년 9월 19일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상을 익혔고, 1916년 원세개가 설립한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단기서 군의 제2사단에서 복무했다. 이러한 경험은 선생의 항일무장투쟁에 큰 자산이 된다.1919년 중국에서 3.1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선생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선생은 다수의 한인독립운동가들과 유학생들이 거주하던 중국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청년단 단원 모집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1921년 4월 이후 의열단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선생은 단장 김원봉과 함께 1922년 의열단의 국내거사를 준비하여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조소앙] 삼균주의 자주국가를 꿈꾸었던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생애 조소앙(趙素昻)1887.4.30 ~ 1958.9.10본관 함안(咸安). 호 소앙. 본명 용은(鏞殷). 자 경중(敬仲). 경기도 파주(坡州)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조선법학전수학교(朝鮮法學專修學校)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여 국무위원 겸 외무부장 등을 지내고, 1919년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국제 사회가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촉구하는 특별결의안이 채택되도록 하였다. 1922년 임시정부의 내분을 수습하려고 김구(金九)·안창호(安昌浩) 등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결성하고,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며, 1937년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 결성에 한국독립당 ..
[신경림] 시인 신경림과 성북 시인 신경림 이야기 신경림 시인의 작품 중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눈 온 아침〉등은 교과서에서 보신 기억이 있으실텐데요. 신경림 시인은 농민시인이자, 현재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하는 성북구민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시인 신경림의 기억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이라는 코너에서 여러 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이번엔 신경림 시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내 삶은 그렇게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만하면 사람답게 살았다는 생각을 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일 다 했어. 여행도 많이 하고, 글도 실컷 썼지. 남은 삶도 좋은 시를 기회 있는 대로 많이 쓰고 싶어. 오로지 시만 쓰고 싶어.” - 2015년 주간경향 인터뷰 중신경림은 1936년 4월 6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습니..
[박태원] 소설가 구보 박태원을 기억하다 박태원의 생애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2.7.~1986.7.10.)은 1909년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 한학을 익히고 고대소설을 읽다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합니다. 1929년 제일고보를 졸업하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호세 이대학 상과에 들어간 박태원은 학교 수업보다는 영화·미 술·음악 등에 흥미를 느끼고 거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최 신 유행하는 머리와 차림새로 현대적 분위기에 젖어 술집 과 영화관 등을 돌아다니던 그는 결국 2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옵니다. 박태원의 시 누님 훼를치며자진닭이세번울제가신누님초생달이저넘을제꼭오마고하시드니보름지나그믐돼도가신누님안오시네 우리누님나주고간괴불주머니속에를세번이나세배돈이들어가도안오시네주머니의수논복사떨어져도안오시네 강남제비왔길래로..
[조지훈] 청록집[靑鹿集] 70주년, 조지훈을 기억하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청록집 대표시 청노루 머언 산 청운사 靑雲寺낡은 기왓집 산은 자하산 紫霞山봄눈 녹으면 느릅나무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맑은 눈에 도는구름 청록집에 수록된 박목월의 〈청노루〉라는 시입니다. 청록집이라는 책 명은 박목월의 청노루라는 시에서 따온 것으로, 시집 출간 후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세 시인은 세간에서 ‘청록파’시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2016년은 청록집이 발간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5월 17일은 성북구와 깊이 연관되어있는 조지훈 시인이 서거한지 4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청록집과 조지훈 시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록집이란? 청록집[靑鹿集] 박목월(朴木月)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의 3인 시집. 1946년 6월 을유문화사(乙酉文化..
[이육사] 탄생 112주년, 이육사를 기억하다 친지들과 불국사에서 - 왼쪽 끝이 맏형 원기이고, 오른쪽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육사이육사의 생애 일제 강점기에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 1904.05.18.~1944.1.16.)는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습니다.이원록의 호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며, '李活'과 '戮史', '肉瀉'를 거쳐 '陸史'로 고쳤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류되어 첫 옥살이를 한 이육사는 1931년 1월 대구 격문사건으로 복역한 것을 필두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33년 7월 ..
[신동엽] 시인 신동엽과 성북 신동엽의 생애 신동엽(1930~1969)은 6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4.19혁명과 민주주의에 관한 작품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신동엽 시인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면서 데뷔했습니다. 폐결핵에 걸린 상황에서도 아내와 자식들과 떨어져 고향 부여에서 작품활동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1960년에 서울로 다시 돌아와 '학생혁명시집'을 발간한 신동엽시인은 그 후 8년간 교직생활을 한 뒤 1969년,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신동엽의 대표작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김동리] 작가 김동리와 성북 김동리 작가(오른쪽)와 최정희 작가의 모습 김동리의 생애 작가 김동리(본명 김시종) 선생님은 박목월, 김달진, 서정주 등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많은 작품들을 펴냈습니다.1934년 시 〈백로〉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이후 〈바위〉(1936), 〈무녀도〉(1936), 〈황토기〉(1939)등 작품활동을 꾸준히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에는 작품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광복 이후로 다시 작품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이 때 발간된 작품으로는 〈역마〉(1948), 〈등신불〉(1961), 〈늪〉(1964)과 장편〈사반의 십자가〉(1955~1957)등이 있습니다.작품활동 뿐 아니라 평론활동도 활발하게 하여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김동리의 대표작 김동리의 장편소설 〈을화〉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
[염상섭] 소설가 염상섭과 성북 1953년 부산 피란 시절, 한 일간지 좌담회장에 모인 ‘폐허’ 동인들. 오른쪽부터 변영로, 박종화, 오상순, 염상섭의 모습이 보인다. 염상섭의 생애 횡보(橫步) 염상섭 선생님은 1897년에 태어나 1963년 직장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뜻 깊은 작품들을 많이 발간했습니다. 1912년 일본으로 가 유학생활을 하다가 병으로 자퇴한 뒤 1919년 3월 독립 시위를 도모하다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1921년 첫 작품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발표한 이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다 1963년,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단편을, 30년대 이후에는 장편을 주로 집필하였는데요, 40년간 장편 28편, 단편 150편, 평론 101편, 수필 30편을 발표하였습니다.작품소재는 서울 중류층, 지식..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 박완서의 생애 박완서(朴婉緖, 1931년 9월 15일 ~ 2011년 1월 22일)소설가. 경기도 개풍군 출생. 대중인기작가이면서 문학성도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 숙명 여고에 다니면서 한말숙·박명성 등과 사귀었으며, 담임교사인 월북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빠와 삼촌이 죽자 생계를 잇기 위해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했으며, 이때 화가 박수근을 알고 그의 그림에 감명받았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나목 裸木〉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이어 〈부처님 근처〉(현대문학, 1973. 7), 〈주말농장〉(문학사상, 1973. 10), 〈겨울나들이〉(문학사상, 1975. 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76..
[박경리] 소설가 박경리와 정릉 박경리의 생애 박경리(朴景利, 1926년 12월 2일 ~ 2008년 5월 5일)소설가,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박금이'로 박경리라는 필명은 김동리가 지어준 것이다. 1945년 진주여고 졸업. 1955년 단편 〈계산〉과 1956년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추천됨으로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1957년에는 전쟁 후의 상처를 다룬 《불신시대》를 발표하여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는 등 신인작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8년에는 〈도표 없는 길〉, 〈암흑시대〉와 장편 《연가》를 발표하였으며, 1959년에 장편 《표류도》를 발표하여 내성문학상을 수상했다. 박경리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는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사는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많다. 1960년대 ..
[최순우] 미술사학자, 작가 혜곡 최순우 최순우의 생애 최순우(崔淳雨, 1916년 4월 27일 ~ 1984년 12월 16일)미술사학자이자 작가. 개성 태생. 본명은 희순(熙淳)이며 순우(淳雨)는 그의 이명(異名)이자 필명이다. 아호는 간송 전형필이 지어준 혜곡(兮谷). 대표관직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주요저서는 《한국미술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등》, 《최순우전집》 등.1946년국립개성박물관 참사를 지내고, 1948년 서울국립박물관으로 전근하여 보급과장·미술과장·수석학예연구관·학예연구실장을 거쳐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한 이후 죽을 때까지 재직하여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마쳤다. 6·25사변 중에는 생명을 내걸고 소장 문화재를 부산으로 안전하게 운반하였다. 1950년대 초반 서울 환도 등 혼란 중에국..
[조지훈] 시인 조지훈과 성북 조지훈의 생애 조지훈 (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국문학자 · 시인. 경상북도 영양 출생. 본명은 동탁(東卓). 지훈의 뜻은 芝(지초 지) - 풀꽃 지 라고도 하며 들판에 일반적으로 자생하는 풀들을 지칭한다. 薰(훈할 훈) - 향기로운 훈 이라고도 하며 지훈이라는 이름 뜻은 특정한 꽃이나 나무의 향기가 아니라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향기 즉 들판을 거닐다 느낄 수 있는 풀향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1941년 21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고, 불경과 당시를 탐독하였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편찬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에 전국문필가협회와 청년문학가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7년부터..
[한용운] 만해 한용운과 성북 만해 한용운의 생애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승려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홍성 출생. 본관은 청주. 본명은 정옥, 아명은 유천,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16세 되던 해 동학란과 갑오경장이 일어났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활의 방편으로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하여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불교에 입문한 뒤로는 주로 교학적 관심을 가지고, 대장경을 열람하였으며, 특히 한문으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 즉 불교의 대중화작업에 주력하였다. 1910년에는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는 논저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36세 때 《불교대전》과 함께 청나라 승려 내림의 증보본에 의거하여 《채근담》주해본을 저술하였다. 1910년 한일 합방이 되면서 그는 만..
[이태준] 상허 이태준과 성북 성북구 저택앞에서 찍은 이태준 작가 가족사진 이태준의 생애 이태준(李泰俊 ,1904년 ~ 미상), 현대문학 소설가.강원도 철원 출생, 호는 상허(尙虛), 대표관직(경력) :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단편소설 〈오몽녀〉(1925)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아무일도 없소〉(동광, 1931.7.), 〈불우선생〉(삼천리, 1932.4.), 〈꽃나무는 심어놓고〉(신동아, 1933.3.), 〈달밤〉(중앙, 1933.11.), 〈손거부〉(신동아, 1935.11), 〈가마귀〉(조선, 1936.1), 〈복덕방〉(조선, 1937.3), 〈패강냉〉(삼천리문학, 1938.1), 〈농군〉(문장, 1939.7), 〈밤길〉(문장, 1940·5·6·7합병호), 〈무연〉(춘추, 1942.6), 〈돌..
[김광섭] 시인 김광섭과 성북 성북동 북정마을 김광섭의 생애 김광섭(金珖燮, 1906년 9월 21일 ~ 1977년 5월 23일)호 : 이산(怡山), 출생지 : 함북 경성, 본관 : 전주주요저서 : 《동경》, 《성북동 비둘기》주요작품 : 《고독(孤獨)》, 《푸른 하늘의 전락》, 《고민의 풍토》등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고뇌와 민족의식을 관념적으로 읊다가 차츰 구체적인 현실을 노래했다. 시어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1911년 온 가족이 북간도로 이주했다가 1년 만에 돌아왔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15년 경성보통학교에 입학, 1920년 졸업했다. 1919년 이학순과 결혼했다.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중동학교에 들어가 1924년 졸업했다.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
[김교신] 독립운동가 김교신과 정릉 성북구의 독립운동가 - 김교신 2015년 8월 아리랑정보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 강연에서는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조규태 교수님께서강연을 진행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북구청 소식지인 '성북소리' 8월호에도 독립운동가 김교신의 기사가 실렸는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김교신의 생애 김교신(金敎臣, 1901년 3월 30일 ~ 1945년 4월 25일) 출생지 : 함남 함흥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훈격(연도) : 건국포장 (2010) 김교신은 함흥농업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동경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지리, 박물과로 전과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 당시 무교회운동을 전개하던 우치무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유학생이던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유석동..
[길상사] 백석과 자야 1995년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출발하여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꾼 이곳은 원래는 요정 대원각이 있던 곳이다. 백석, 자야 기행 그리고 영한 백석(白石·1912∼1996),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나와 나타샤와 흰 장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던 천재 시인. 천재 시인 백석 앞에 홀연히 나타난 여인이 바로 백석의 자야, 김영한(1916∼1999)입니다. 그녀 나이 열여섯, 기울어가는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되었습니다. 백석과 기생 진향의 첫 만남, 그리고 ‘자야’ 진향 스물 둘. 백석 스물 여섯. 백석은 첫눈에 진향을 와락 안으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