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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보 어때요?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


 박완서의 생애

 

 

 


박완서 1931. 10. 20 경기 개풍~2011. 1. 22 서울.

소설가.

대중인기작가이면서 문학성도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 숙명 여고에 다니면서 한말숙·박명성 등과 사귀었으며, 담임교사인 월북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빠와 삼촌이 죽자 생계를 잇기 위해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했으며, 이때 화가 박수근을 알고 그의 그림에 감명받았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나목 裸木〉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이어 〈부처님 근처〉(현대문학, 1973. 7)·〈주말농장〉(문학사상, 1973. 10)·〈겨울나들이〉(문학사상, 1975. 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76년 〈동아일보〉에 〈휘청거리는 오후〉를 연재했다. 수필집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살아있는 날의 소망〉(1982) 등이 있으며〈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등의 소설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40세의 늦은 나이로 출발하여 20년 동안 100편 안팎의 소설을 썼으며 많은 문제작품을 써냈다. 6·25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사회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고 개성을 잃어가는 순응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1981년 이상문학상,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1993년 현대문학상, 1994년 동인문학상, 1999년 만해문학상, 2000년 인촌상, 2006년 호암예술상을 받았다.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하다 2011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출처:"박완서"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8b3600a]

 박완서 작품 속 정릉

 

 

[살아있는 날의 소망/박완서 지음/문학동네/2015]

 

나는 사촌들과 함께 큰 소쿠리를 가지고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그때 우리 집은 삼선교였는데 아리랑고개를 넘어 정릉까지는 걸어서 한참이었다더군다나 그때 정릉 숲은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전시라 지뢰가 묻혀 있을지도 모르고 공비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흉년2/박완서 지음/세계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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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나는 순정이를 따라 정릉 개천가까지 와 있었다. 가뭄이 계속되는 한여름의 개천 물은 썩은 내를 풍 기며 정지해 있었고, 비탈 동네 한가운데 드높은 장대 끝의 백기도 축 늘어진 채 정지하고 있었다.

나는 내 구역질이 가장 심하던 여름날, 정릉 집에서 본 기묘한 광경을 상기했다. 그때, 이 여자는 그 불구의 다리를 애처롭게 끌고, 아버지의 횡포에 가까운 무자비한 혹사에 노예처럼 순종했었다.나는 정릉 집에 갈 때 마다 내가 이들 모자에게 불쾌하고도 절대적인 특권을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애야,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로 시작해서 이 모에게 돈 20만 원을 거저주지 않고 꾸어준 걸 뉘우쳤고, 할머니가 정릉 새 절에 가실 때마다 돈을 많이 못 드린 걸 뉘우쳤고, 수희 언니를 돈을 흠뻑 들여서라도 대학에 못 보낸 걸 후회했고,

내일 일찍 정릉 새 절에 다녀오시도록 해야겠다. 무당 할멈, 아니지 참 보살님께 이게 무슨 재앙인지 여쭈어봐 가지고 불공을 드리든지 살풀일 하든지 하고 나서 일을 시작해도 시작해야 할까 보다.

정릉 살 땐 그래도 엎으라지면 코 닿을 데 당신이 계 시겠거니 형님이 계시겠거니 그저 그거 하나만 믿고 허구 헌 날 하는 독수공방이 쓸쓸한지도 무서운지도 모르겠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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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전집/박완서 지음/세계사/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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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집 앞에 다다를 때 까지도 날은 밝지 않았다. 차마 그 시각에 문을 두드릴 수는 없었다. 다시 연탄재가 쌓이기 시작하는 더럽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춥고 비참한 기분으로 방황했다. 날이 밝아 오는 것과 함께 하나 둘 구멍가게들이 문을...(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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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구글 도서 검색 <!--[end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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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그 남자네 집>과 성북

 

 

 [그 남자네 집/박완서 지음/현대문학/2004]


성신여대면 돈암동에 있을 텐데? 나는 좀 놀란 소리로 물었다. 맞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동으로 나누어져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고 후배가 가르쳐 준 건 새 이름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쪽 지리에 훤했다. 위치를 자세히 물어보니 성신여대와 성북경찰서 사이였다. 내 처녀 적의 마지막 집도 성신여고와 성북경찰서 사이에 있었다.

80년대 초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서 센 강을 보고 애걔걔 그 유명한 센 강이 겨우 안감내만 하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기억 속의 안감내는 개천치고는 넓은 시냇물이었다. 집만 나서면 개천 건너로 곧바로 성북경찰서의 음흉한 뒷모습과 거기 속한 너른 마당이 바라다보였다


출처:구글 도서 검색


※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안감내


이미지 출처:걸어서 좋은 길 http://blog.daum.net/01199053017/4328366
북악산 줄기인 구준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성북구 성북동과 동대문구 신설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들어 가는 하천으로서, 성북천 · 안감내 · 안암내라고도 한다. 좁게는 성북천의 하류로 안암동 지역에 와서 안암내라고 하였는데, 변하여 안감내가 되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안암천 [安岩川] (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참고 자료

 

 

*관련 책


1. 엄마의 말뚝/ 박완서 지음/ 세계사/ 2012

2. 나목/ 박완서 지음/ 세계사/ 2012

3. 그 여자네 집/박완서 지음/문학동네/2013

4.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지음/세계사/2012

5. 그 남자네 집/박완서 지음/현대문학/2011


*영상

-작가 박완서 www.youtube.com/watch?v=zNxgKOahpE8

-故박완서님을 기리며 www.youtube.com/watch?v=ec-9e-NytAQ



*사이트


-박완서 팬페이지 http://user.chollian.net/~hephziba/s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