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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소설가에 대한 기억

 

 

김학철 소설가의 작품을 처음 읽은 때가 1948년 정도 될거야.

담뱃국이란 소설이었지

 

김학철 소설가는 정통 공산주의자이지만

그 사람의 작품은 공산주의에 너무 치우치지 않고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 사람 사는 기쁨을 그려냈어

 

그 작품에 대해서는 88년에 창비에

민중생활사의 복원과 혁명적 낙관주의의 뿌리라는 글을 하나 쓰기도 했지

 

그 글을 인연으로 93년 연변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일행을 초대하여 처음 김학철 소설가를 만났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김학철 소설가는 94KBS 해외동포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한국에서도 많은 문학책이 나왔어

하지만 김학철씨는 정통 공산주의자이고

공산주의가 인류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어

 

김학철은 3개 정부의 탄압을 받았음에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은 사람이야.

옹졸하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문학만이 최고이다. 가 아닌

자신과 입장이 다른 문학에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야.

 

그럼, 이제 김학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인물정보

 

 


   




| 소설가 김학철


| 독립운동가이자 북한의 소설가


| 저서 해란강아 말하라(1954), 격정시대(1986)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


                    _2001년 9월, 김학철 유언




#김학철#독립운동가#성북문화재단#성북구립도서관#성북#아카이빙#지역정보#김학철 소설가#격정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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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신경림과 문학 이야기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번엔 시인 신경림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합니다.

  60년대까지의 한국 시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모더니즘적 작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시와 대중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하는 시대에, 대중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떠나있는 시는 당연히 대중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경림 시인의 시는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어휘와 문장을 사용했다는 점으로 당시 시류와 크게 구별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시인 신경림의 시는 큰 어려움 없이 감성을 읽어내고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시인 신경림은 첫 시집 농무이후 민중의 생활에 밀착한 현실 인식과 섬세한 서정성, 친숙한 리듬을 결합한 시세계로 한국시의 흐름을 바꾸며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등단 이후 농무, 새재, 목계장터, 가난한 사랑노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 낙타, 사진관집 이층등 많은 시집을 내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중 민중과 인간에 대한 시인의 애정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시를 몇 편 소개해 볼까 합니다.

 

 

시인 신경림, 민중의 모습을 시에 담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목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어세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뱃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이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젖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 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겨울밤』, - 農舞 中 -

 

 

겨울밤은 신경림 시인이 민중 시를 쓰게 되는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등단 후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진보당 사건으로 검거되는 일을 겪고 그로 인한 충격과 문단에 대한 불신이 겹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합니다. 그 뒤, 이 시를 발표하는 65년 말까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요. 겨울밤은 신경림 시인의 이전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 바탕에는 신경림 시인이 낙향해 살았던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경험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창·영월·문경·춘천 등지를 떠돌며 보아왔던 농촌의 민중들이 사는 삶의 모습을 작품에 녹여낸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겨울밤이후에도 신경림 시인은 자신이 보아온 농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은 시를 많이 썼는데요, 그 중 하나가 신경림 시인의 대표작으로 너무나 유명한 농무입니다. 신경림 시인이 이 시를 위해 만든 단어인 농무(農舞)’에서는 흥겨운 농악과 춤판이 떠올려지는 동시에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농촌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진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짓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헤헤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農舞』,  - 農舞 中-

 

  

 

 신경림 시인과 성북

 

 

구립도서관 블로그를 많이 찾아주신 분이라면 신경림 시인이 성북에 거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실텐데요.

성북에 오래 거주하신 만큼, 성북과 연관된 시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신경림 시인의 시 중, 성북을 담고 있는 두 개의 시를 소개하고자합니다.

 

#episode1 가난한 사랑 노래

 

1987년 신경림 시인이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살 때였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평소 자주 가던 집 근처 술집 주인의 딸에게 할 말이 있다며 기다려 달라는 말을 듣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그 딸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시인 앞에 함께 앉았습니다. 이 젊은 남녀 두 사람은 신경림 시인에게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남자는 수배자로 지명되어 쫓기는 처지인지라 사람들 앞에 서기 힘든 상황인데 결혼식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 본 것이었지요. 이에 신경림 시인은 두 사람의 결혼을 독려하며 축시를 쓰고 주례까지 맡아 이 결혼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힘든 결혼을 성사시킨 뒤 신경림 시인은 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했습니다.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 병의 소주와 한 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 번이었지만

 

- 신경림, <너의 사랑> 중 일부

 

  

신경림의 <너의 사랑>이라는 시는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이 시는 훗날 널리 알려진 <가난한 사랑노래>의 토대가 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랑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가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 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pisode2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성북을 담고 있는 시 중, 최근 발간된 시집인 <사진관집 이층>에 수록된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라는 시에는 성북의 곳곳을 작은걸음으로 바삐 걸어다니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 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

약방에 들러 소화제를 사고

떡집을 지나다가 잠깐 다리쉼을 하고

동향인 언덕바지 방앗간 주인과 고향 소식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엔 동태만을 파는 좌판 할머니한테 들른다.

 

신경림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중 일부

 

->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신경림 시인 낭송 들으러가기

 

신경림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고향에서 제일 먼 곳,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가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던 1980년대까지는 민요기행 등, 전국을 떠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그 후 1994년 여권을 처음 발급받고는 한 해에 서너 번씩 해외를 누비고 다녔지요.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에서 초청을 받아 다녀왔으며 이어 이집트, 쿠바, 멕시코, 콜롬비아까지 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많은 곳을 다녀왔어도 정릉 골목에 붙박여 30년을 살았던 어머니보다 더 많이 본 건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돌아다니는 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어머니가 나보다 세상을 덜 보고 덜 알고 저 세상으로 가셨을까.

아무래도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신경림(1935~)

 

 

 참고자료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1, 김명호 외, 휴머니스트, 2006.

*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 나무이야기, 200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 최재봉,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25> 신경림씨 <농무> 한겨레신문 1996. 8. 9.

* 박상미,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등단 60년 신경림 남은 삶도 시만 쓰고 싶어”, 2015.06.23, 주간경향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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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신경림 이야기

 

 

신경림 시인을 아시나요?

신경림 시인의 작품 중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눈 온 아침> 등 은 교과서에서 보신 기억이 있으실텐데요. 신경림 시인은 농민시인이자, 현재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하는 성북구민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시인 신경림의 기억속의 문인 그리고 성북>이라는 코너에서 여러 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이번엔 신경림 시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내 삶은 그렇게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만하면 사람답게 살았다는 생각을 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일 다 했어. 여행도 많이 하고, 글도 실컷 썼지.

남은 삶도 좋은 시를 기회 있는 대로 많이 쓰고 싶어. 오로지 시만 쓰고 싶어.”                                       

- 2015년 주간경향 인터뷰 중

 

 

신경림은 193646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43년 노은국민학교에 입학하고, 4학년 때 당숙과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 낙원의 이미지로 나오곤 하던 목계에 가게 됩니다. 그는 이때 본 목계의 풍경을 공책 한 귀퉁이에 글로 남기는데, 이것이 선생의 눈에 띄면서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신경림이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생합니다. 피난살이를 하던 그의 가족은 9·28수복 뒤 곧바로 집을 찾았다가 미처 후퇴하지 못했던 인민군을 피해 그의 집안에서 운영하던 광산 근처의 산 속에 숨어 며칠을 지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산에 숨어살던 광부 셋을 헌병이 총으로 쏴 죽이는 그는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뒤 신경림은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나중에 글을 쓰게 된다면 광산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결심으로 나온 시가 바로 폐광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신경림은 학업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한 절씩 남한강가를 배회하는가 하면 국어 시험지를 백지로 내는 등 문제 학생이라는 딱지가 붙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국어교사이던 유촌 선생은 처벌 대신 시 다섯 편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는데, 이 과제물을 매개로 신경림은 유종호와 처음 만나게 됩니다. 유촌 선생의 아들이며 고등학교 선배인 유종호가 신경림이 낸 시를 읽고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나중까지 이어져 문단에서 유종호는 시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됩니다.


 

 문단 진출과 낙향

 

 

 

<출처: 문학예술>

 

1955년 신경림은 동국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합니다. 그 사이 집안 형편이 더욱 어려워져 그는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며 쉽지 않은 서울 생활을 합니다. 1956년 신경림은 이한직의 추천으로 진보적 성향의 문예지 문학예술갈대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오게 됩니다. 이즈음 그는 금서를 읽던 친구가 진보당 사건으로 검거되는 일을 겪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한 충격과, 평소 품고 있던 문단에 대한 불신이 겹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합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신경림은 평창·영월·문경·춘천 등지를 떠돌며 광부·농부·장사꾼·인부·강사 등으로 지냅니다. 이 시기에 그는 시와 점점 멀어지면서 사회·과학 서적은 더러 봐도 문학 서적은 읽지 않으며, 소중히 간직해온 시집과 문학잡지마저 몽땅 버리기도 합니다.

 

 

 문단 복귀, 그러나 계속되는 불운

 

 

 

 

                                             <출처: 신경림 시인 소장자료>

 

 

서른 즈음, 결혼할 무렵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시 쓰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충주에서 짐을 싸들고 서울 홍은동 김관식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본격적으로 시 쓰기에 몰두합니다.

 

 

 

 

                                                                                        <출처: 신경림 시인 소장자료>

 

1970년 신경림은 유종호의 소개로 창작과비평에 시편들을 발표하는데, <농무>는 이 가운데 한 작품입니다.

민중적 화자를 내세워 민중의 현실과 정서를 생생히 보여주는 그의 빼어난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은 당대 문단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신경림은 농무한 권으로 새로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으로 자리매김 되고,1만해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농무로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1970년대에 신경림은 거듭된 불운과 궁핍으로 몹시 가파르고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어려운 시절을 군말 없이 함께 견딘 아내가 첫 시집이 나오는 것을 못 보고 눈을 감으며, 4년 뒤에는 어머니가, 또 한 해가 못 되어 병중에 있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의 고단했던 삶이 나타난 시는 안양시 비산동 48943입니다.

 

그는 김관식의 집에서 나와 안양으로 내려가 조태일과 어울리며 기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교육평론의 편집부원으로 잠시 몸을 담기도 하나 이마저 기관의 압력으로 인해 그만두었습니다. 이때 받은 퇴직금으로 길음동에 집을 구해 삶의 근거를 서울에 마련하지만 궁핍한 생활은 지속되었습니다.

 

 

  세상과의 끊임없는 소통

 

 

19807, 신경림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고은, 송기원과 함께 서대문구치소에 갇혔다가 두 달 만에 풀려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4년에는 자유실천 문인협의회고문, ‘민주화청년운동연합지도위원, 1985년에서 1987년까지 민족민주통일운동연합중앙위원회 위원 등 중요한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습니다.

 

<출처 : 함께쓰는 민주주의님 블로그(http://blog.kdemo.or.kr/1010)>

 

1984년 신경림은 민요연구회를 꾸려 그동안 혼자 해오던 민요 채집을 여럿이 함께 하며 문화운동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1985년 그는 통일을 노래한 본격 민요 시집 달 넘세를 내놓고 1987년에는 장시집 남한강, 1988년에는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를 펴냅니다. 가난한 사랑노래에서 신경림은 도시 변두리 빈민들의 삶으로 눈길을 돌려, 농민 시인에서 민중시인, 노동 시인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1995년에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시선집이 <갈리마르>에서 나와, 신경림 시의 문학성이 국제적으로 공증되는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줍니다.

 

신경림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아 시 창작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맡고 동국대학교 석좌교수가 된 것도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출처

 

신경림 시인

∎ 「문학예술, 문학과 예술사

∎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 2009, 나무이야기
[기사]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등단 60년 신경림 남은 삶도 시만 쓰고 싶어”,

주간경향 (2015.06.15.)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_id=201506151725051

 

#성북구 #성북구립도서관 #도서관본부 #신경림 #시인 #시 #정릉동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 제작 : 덕성여자대학교 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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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현우 시인에 대한 기억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찔레꽃]의 소설가 김말봉의 의붓아들로 이현우 시인이라는 이가 있었어.


정식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었는데, 동국대학교에 잠깐 적을 둔 적이 있어서 나랑 친해졌지.


이 사람은 집을 한 번 나오면 보름씩, 한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명동을 맴돌았어.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나오면 말이야, 맨 처음으로 넥타이가 빠져나가고


윗도리, 구두, 와이셔츠까지 하나씩 없어지곤 했지.


그러다 러닝 차림이 될 즈음이면 배다른 누이동생이 찾아 왔고, 또 못이기는 척 집으로 끌려 들어가.


소문에는 그가 여러 신문에 동시에 연재되는 김말봉의 소설을 대필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초고로 넘겨지는 소설들을 원고지에 옮겨 쓰는 일이 그가 하는 일인 것 같았단 말이지.


종종 이현우가 오랫동안 거리를 떠돌면 연재가 중단되는 경우가 있었거든.


그런걸 보면 그렇게 간단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고
.


내가 마지막으로 그사람을 만난건 직장에서 편집일을 할 때였어.


점심시간이 되어서 출입구쪽이 시끄럽다 싶더니 수위가 나를 찾더라고.


따라 나가보니 문앞에 거지가 있어. 이현우가 거지행색의 젊은이들이랑 쭈그리고 있던거야.


나를 보더니 봐라, 내가 나오라카몬 이놈아는 나온다캈잖아!’라고 소리치더라고.


그리고는 자기들이 밥 먹는데는 따로 있다면서 돈만 받아가지고 사라지는데, 꼭 거지대장의 몰골이었지.


그 후로는 부산에서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도 했는데,


80년 이후에는 아무도 그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어.


군부가 사회정화 어쩌고 할 때 부랑자로 몰려서 잡혀가 죽었을거라고 친구들은 지금도 그렇게 여기고 있지


 인물정보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이현우 시인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0103&cid=41708&categoryId=41711 

 


 #신경림 #성북구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도서관 #성북 #아카이빙 #지역정보 #이현우 시인 #김말봉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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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한남첨 소설가에 대한 기억 - 

 


한남철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는 참 재미있으면서 무거운 것이 있지


그는 월간 중앙 편집을 맡고 있었는데 정말 거침이 없었어.


마음에 들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사정없이 퇴짜를 놓았지.


친구들의 소설을 읽고도 재미가 없어!’라고 말하거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아 먹을 수가 없네!’라고 말하고는 했었어.


그래서 적도 많았지만, 그 시원시원한 태도 때문에 좋아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어.


물론 문인들 중에는 드물게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술 사기를 아까워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남철 소설가를 단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문학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작품을 못 쓰면 마주 앉기를 싫어했거든.


그런 그가 나한테 전화를 했어. 창비에 실린 내 시를 보고 연락하는거라면서


'나 한남철이외다시 잘 읽었어요. 내 후배들에게 시란 이렇게 쓰는 거라고 한소리 했지.’


그리고는 바로 술한잔 하자고 불러내더라고. 그렇게 그 사람하고는 십년지기처럼 가까워졌지.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당시에 신문에 홍길동을 연재하던 박연희 작가에게 일면식도 없으면서 편지를 썼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선생에게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어 소식을 전한다고 말이야.


그러고 둘은 또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지. 그런 그가 간경화로 몸이 많이 망가졌는데,


그 전에 부인이 먼저 많이 아팠어.


부인은 소설가 이순은이었는데 대학교수에 텔레비전 사회자로 엄청 잘나가던 사람이었지.


그런데 지식과 기억을 상실하는 희귀한 병에 걸렸고,


한남철 소설가는 부인 간호를 열심히 하다가 간경화가 심해진거지.


인천 백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내가 찾아갔었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정말 좋은 소설을 쓰고 싶어 했어.


소설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을 도저히 마주보고 있을 수가 없었지.


벌써 오래전 이야기인데도 그 눈물은 내 안에서 떨어진 적이 없어. 지금도 맺혀 있는 것 같아.


 한남철 인물정보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한남철 소설가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0571&cid=41708&categoryId=41711

 


 #신경림 #성북구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도서관 #성북 #아카이빙 #지역정보 #한남철 소설가 #이순은 #박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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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가 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과 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민병산 선생에 대한 기억

 


글씨를 엄청 잘 쓰던 민병산 선생이 있었어.


처음에는 좀 서투른 글씨를 썼었는데, 하루 이틀 정진해 나가더니


결국에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체를 가지게 되었지.


그런 민병산 선생이 아버지랑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나랑 천상병 시인이 본적이 있어.


관철동 한국기원 앞이었는데, 구부정하게 늙은 민병산 선생이


담배를 든 손을 뒤로하고는 발끝을 보고 서 있었고,


그보다 더 늙은 똑같은 얼굴의 아버지는 담배를 문 채 하늘을 향해 서 있었지.


그러기를 십분. 아버지가 들어가봐라라고 말하니,


민병산 선생이 하고 한국기원으로 올라가고, 아버지는 골목으로 사라지더라고.


그 모습을 같이 본 천상병 시인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무거운 짐이라는 이름의 인상파 인물화 같다


아버지도 아들도 무거운짐을 지고 있는 표정이었던거지.


사실 민병산 선생의 큰 할아버지는 구한말에 괴산 군수와 청주 군수를 지냈고,


아버지도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나왔거든


친일이라는 짐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며,


그 짐을 지고 있는 민병산이라는 인간의 아픔과 정직함을 안다면


천상병 시인의 그 말이 어떤 무게인지 알 수 있을거야.

 

 

민병산 인물정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민병산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42675&cid=51895&categoryId=53943 


 


 #신경림 #성북구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도서관 #성북 #아카이빙 #지역정보 #민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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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 / #천상병 시인에 대한 기억

 


신경림 시인의 #김관식 / #천상병 시인에 대한 기억 - 

 

하루는 천상병 시인하고 김관식 시인 집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잤거든


그런데 다음날 천상병 시인이 나한테 이러는 거야


오늘 나만 따라다니레이. 술 실컷 먹여주꾸마나는 신이 나서 따라나섰지


그랬더니 동대문에 있는 고서점으로 나를 이끌더라고


그때만해도 다 읽은 책을 고서점에 내다 팔고 술마시는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렇게 앞장서서 가던 천상병 시인이 고서점에 들어가서는


내 귀한 책 가져왔으니까 값을 잘 쳐주시오!’이러면서 종이봉투를 당당하게 내미는 거야


그런데, 주인이 종이봉투를 여는데 헌 원고지가 나오더라고.


천상병 시인은 당황해서는 이럴 리가 없다


분명히 내가 그 책을 찾아 여기 넣었단 말이다.’라고 하더라고.. 


알고봤더니 천상병 시인이 김관식 시인 서재에서 값나갈만한 책을 찾아서 봉투에 넣어 놓았는데


김관식 시인이 그걸 알고 헌원고지로 바꿔치기를 한거지


결국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김관식 시인 집으로 쳐들어갔지


천상병 시인은 화가 나서 씩씩 거리고, 김관식 시인은 웃으면서 


너희들 다리품 헛판게 불쌍해서 내가 술을 사마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날도 밤새도록 같이 술을 마셨어.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거든


작은 일에도 웃고, 성내고, 울다가 또 술 마시고 눈 뜨면 또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그래도 전혀 아깝지 않아. 그 속에서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쓰고 살았거든.


 


 #신경림 #성북구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도서관 #성북 #아카이빙 #지역정보 #김관식 시인 #천상병 시인 #헌책 #원고 #고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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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성북의 지난 책장을 넘기다 #4 김관식 시인

 

 

신경림 시인의 #김관식 시인에 대한 기억 - 

 

 

[대한민국 김관식]이렇게 명함에 박아서 지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던 시인이 있었어.

 

서정주 선생하고 동서지간이었는데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정초에 선배 문인들한테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김관식 시인이 이러는 거야.

 

‘서정주 형님은 친일을 했으니, 조지훈 시인한테 먼저 가자.’ 그리고는 성북동으로 갔지.

 

가서 세배 드리고 술을 마시는데 저녁까지 마셨어.

 

그리고 서정주 시인 댁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김관식 시인 신발이 없는 거야.

 

술에 많이 취해서 택시를 타는데 신발을 벗고 탄거지. 그렇게 맨발로 서정주 시인 댁에 가서 세배를 드렸지.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다정하게 우리를 반겨 주셨거든. 그리고 또 술자리가 이어지는데 ……

 

그냥 분위기 좋게 마시면 될걸, 김관식 시인이 그러는 거야. ‘형님, 사실 오기 전에 조지훈 선생님댁에 먼저 다녀왔어요.

 

형님은 친일을 하셨으니 밀리신거에요.’

 

서정주 선생이 술을 따라주던 주전자로 김관식 시인 머리를 때리시더라고.

 

김관식 시인은 그런 사람이었어.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하는 그런 사람.

 

누구누구 문인 출판기념회에 가서는 ‘이런 것도 책이라고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하는데 ……

 

모두가 질색을 했지.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김관식 시인을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안 했는데, 또 어떻게 알고 제발로 찾아가.

 

그리고 당당하게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거야. 물론 칭찬보다는 날선 비판이 담긴 말들이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문학을 사랑한 시인이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 아니겠어? 내가 사랑하는 문학이었기에 어정쩡한 책들을 책으로 인정 할 수가 없었던 거지.

 

요즘 가끔 그리워. 나, 이만큼 문학을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말하던 그 목소리가 말이야.

 

 

#4 자하문 밖 - 김관식

 

 

나는 아직도 청청이 어우러진 수풀이나 바라보며 병을 다스리고 살 수밖엔 없다. 혼란한 꾀꼴새의 매끄러운 울음 끝에 구슬 목청을 메아리가 도로 받아 얼른 또 넘겨 빽빽한 자기 틈을 요리조리 휘돌아 구을려 흐르듯 살아가면 앞길은 열리기로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길은 물이 흘러가는 길.
산마을 어느 집 물항아리에 나는 물이 되어 고여 있다가 바람에 출렁거려 한줄기 가느다란 시냇물처럼 여기에 흘러왔을 따름인 것이다.

 

여름 햇살이 얼음처럼 여물어 쏟아지는 과일밭.
새카맣게 그을은 구리쇠빛 팔다리로 뺨을 적시고 일을 하다가 가을철로 접어들면 몸뚱아리에 살오른 실과들의 내음새를 풍기며 한번쯤 흐물어지게 익을 수는 없는가.

 

해질 무렵의 석양 하는 언저리
수심가 같이 서러운 노을이 떨어지고 밤 그늘이 덮이면 예저기 하나둘씩 초록별이 솟아나 새초롬한 눈초리로 은근히 속샐기며 어리석음을 흔들어 일깨워 준다.

 

수줍은 달빛일래 조촐하게 물들어 영롱히 자라나는 한 그루 향나무의 슬기로움을 그 곁에 깃들여서 배우는 것은 여간 크낙한 기쁨이 아니라서 스스로의 목숨을 곱게 불살라 밝음을 얘기하는 난낱 촛불이 열두 폭 병풍 두른 조강한 신혼 초야 화촉동방에 시집 온 큰애기를 조용히 맞이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구름 속에 파묻혀 기러기 한백년을 이냥 살으리로다.
 

 

#신경림 #성북구 #성북문화재단 #성북구립도서관 #성북 #김관식 #자하문 밖 #기억 #아카이빙 #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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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신경림 시인의 기억 속의 문인성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성북의 지난 책장을 넘기다 #3 조지훈 시인

 

 

신경림 시인의 #조지훈 시인에 대한 기억 - 

 

조지훈 시인은 고려대에서 교수를 지냈거든.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학교 교수면 나는 시험도 안치고 등록금도 안 내고 아버지가 계신 대학에 입학할 수가 있었어.

지금 들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지.

그런데 조지훈 시인은 자기 자식들을 절대로 고려대로 입학하지 못하게 했어.

당시에도 아셨던 거지.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말이야.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에 보내는 것도 못하게 할 정도였는데 뭐. 어쨌든 사모님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거지.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등록금도 안 내고 보낼 수도 있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하니.

하나도 아니고 둘째까지. 그래서 가끔 남편을 향해서 ‘멍텅구리!’라고 잔소리를 한 거야.

그걸 막내가 듣고는 ‘아, 우리 아버지는 멍텅구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 (웃음)

시인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멍텅구리라고 듣더라도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아니라면 안 가는 거지. 그렇게 살지 않고 어떻게 시를 쓰겠어.

그분은 그랬어. 진짜 시인이었지. 생각하고, 살고, 쓰는 분이었어. 그래서 지금도 그분의 시가 읽히는 걸 거야.
참, 조지훈 시인이 돌아가시고 사모님은 그동안의 한을 풀 듯 막내한테는 과외부터 시작해서 하고 싶은 걸 다 시키셨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 말이야. 그래서 서울대 갔어. 지금 엄청 잘 됐어. (웃음)

 

#3 풀밭에서 - 조지훈

 

 

바람이 부는 벌판을 간다 흔들리는 내가 없으면 바람은 소리조차 지니지 않는다
머리칼과 옷고름을 날리며 바람이 웃는다
의심할 수 없는 나의 영혼이 나즉히 바람이 되어 흐르는 소리.

 

어디를 가도 새로운 풀잎이 고개를 든다
땅을 밟지 않곤 나는 바람처럼 갈수가 없다
조약돌을 집어 바람속에 던진다 이내 떨어진다
가고는 다시오지 않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기에 나는 영영 살아지지 않는다.

 

차라리 풀밭에 쓰러진다 던져도 하늘에 오를 수 없는 조약돌처럼
사랑에는 뉘우침이 없다 내 지은 죄는 끝내 내가 지리라
아 그리움 하나만으로 내 영혼이 바람속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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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의 지난 책장을 넘기다 #2 청수장

 

 

신경림 시인의 #청수장에 대한 기억 - 

 

성북에 청수장이라고 있었어

 

지금 들으면 무슨 여인숙 같은 이름이지만, 그때만 해도 알아주는 곳이었거든.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거기서 첫날밤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고,

 

다니는 차들도 없어서 택시를 불러서 가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드는 곳이었지.

 

애인이랑 비싸고 멋진 곳에 가고 싶잖아. 그게 청수장이었지.

 

거기 가려고 돈을 모으는 친구도 있었고, 다녀와서 자랑하는 친구들도 있었어.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그런 게 뭐 대수인가 싶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사치였거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사치.

 

시간이 지나 많은 게 바뀌었지만, 요즘 사람들도 가지고 있지 않나?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은 사람 말이야.

 

#1 가난한 사랑의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던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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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의 지난 책장을 넘기다 #1 조지훈 시인

 

 

신경림 시인의 #조지훈 시인에 대한 기억 - 

 

밤늦게 집에 들어가다 조지훈 시인 집앞을 지나잖아.

 

혹시라도 불이 켜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거기로 가는 거야.

 

문을 두드리면 키큰 양반이 나와. 조지훈 시인이 키가 컸거든.

 

그럼 거기서 또 마시고 자는 거야. 원래부터 그런 것처럼.

 

아침이 되면 사모님이 아침식사까지 차려주고 그랬지.

 

몇 명이 들이닥쳐도 한결같이 말이야.

 

성북동을 지나다 문득 그집 근처를 지나면 생각나.

 

이제는 허물어지고 없어졌지만,

 

기억, 지난날은 그 자리 그대로니까.
 

#1 승무 - 조지훈

 

 

얇은 사 하야인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각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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