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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문인 아카이브/성북문인

[이육사] 탄생 112주년, 이육사를 기억하다

친지들과 불국사에서 - 왼쪽 끝이 맏형 원기이고, 오른쪽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육사

이육사의 생애

 

일제 강점기에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 1904.05.18.~1944.1.16.)는 조선일보에 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습니다.

이원록의 호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며, '李活'과 '戮史', '肉瀉'를 거쳐 '陸史'로 고쳤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류되어 첫 옥살이를 한 이육사는 1931년 1월 대구 격문사건으로 복역한 것을 필두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1933년 7월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30년대 후반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고한글로 된 문학작품을 쓰는 것이 불가능해지자그는 한시를 발표하는 것으로 저항하였습니다. 1943년 4월 독립운동을 위해 다시 베이징으로 떠났고같은 해 어머니와 큰 형의 소상에 참여하려 귀국하는 길에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고 합니다.


이육사의 대표작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26세에 첫 시(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등단하였고30세에 대중창간호에 평문 자연과학과 유물 변증법을 게재하였습니다35세부터 대표시로 알려져있는 청포도 절정광인의 태양 등의 시를 발표하였고1943 1월 한글 사용 규제 받자 한시(漢詩)만 발표하였습니다1944 1 16일 새벽, 북경의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 후 동생 원조가 유시(遺時) 曠野를 소개했으며 그와 조카 동영에 의해 육사시집(陸史詩集)이 출판되었습니다.

"육사는 문단의 어느 유파나 동인에 가담하여 작품 활동을 한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짧은 전 생애를 통해서 오직 독립투쟁에 바쳐왔다는 사실이 그가 문단 생활에 전념할 만큼 정신적 겨를이 없다는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의 시작(時作)을 위시한 일련의 작품들은 대륙을 내왕하면서 품었던 조국에 대한 무한한 향수, 아니면 조국 광복에 대한 애타는 정희(情僖)의 체현(體現)일 것이다."


- 이육사 문학활동 중, 김학동(서강대교수) -



이육사와 성북

시인 이육사는 1939년 종암동으로 이사하고 그 해 8,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청포도를 발표하였다. 그 외에도 널리 알려진 시 절정 , 광인의 태양 등의 시도 종암동 시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성북문화원에서는 이육사 집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참고 자료

*관련도서 및 자료

청포도 ; 이육사. 범조사, 1956.

광야  ; 이육사. 형설출판사, 1971.

육사시집 ; 이육사. 열린책들, 2004. (성북구립도서관 소장도서)

성북문화, 2015 3성북문화원

 

출처

*이육사 이미지 - 이육사 문학관

http://264.or.kr/board/


*이육사의 생애 - 위키백과


*이육사와 성북 - 성북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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